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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야생화

야생화로 꾸미는 학교 생태 교육 공간 사례

1. 학교 공간 혁신의 시작 — 야생화 정원과 생태 교육의 결합

최근 몇 년간 전국의 초중고교에서 ‘학교숲’, ‘교정정원’, ‘생태 놀이터’ 같은 자연형 조경 프로젝트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과거 학교의 녹지가 단순히 잔디밭이나 화단 형태로 존재했다면, 오늘날에는 야생화 중심의 생태 교육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환경문제와 기후위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제고가 있으며, 동시에 학생들의 정서적 안정과 생태 감수성 함양을 중시하는 교육철학이 작용한다.

야생화는 교내 정원 조성에 이상적인 식물이다.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토종식물 중심의 식생은 지역 환경에 적응력이 높고 관리 비용이 적다. 둘째, 다양한 색·형태·개화 시기를 지닌 야생화는 학생들이 계절 변화를 직접 관찰하며 식물의 생태 주기를 배울 수 있는 훌륭한 학습 교재가 된다. 셋째, 꽃가루와 열매는 곤충과 조류를 유인해 학교 안에서도 미소 생태계를 형성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아이들은 생명을 단순히 ‘지식’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관찰·체험·참여’를 통해 살아있는 생태 순환의 일부로 경험하게 된다.

특히 최근 교육청 단위의 ‘그린스마트 미래학교’ 사업에서는 학교 리모델링 시 생태정원, 빗물정원, 곤충호텔, 야생화 둔덕 등의 설계를 의무적으로 포함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서울, 경기, 대전, 전북 등 지역 교육청에서는 각각 야생화 식재 매뉴얼교사 연수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교직원과 학생이 함께 정원을 설계·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야생화로 꾸미는 학교 생태 교육 공간 사례

 

2. 공간 설계와 식재 전략 —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생태 조성

학교 내 야생화 정원 조성은 단순히 ‘꽃밭 꾸미기’가 아니다. 학생의 안전, 학습효과, 유지관리 효율성을 모두 고려한 교육적 설계 행위이다. 우선, 공간은 크게 세 가지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관찰과 학습 중심의 교과 연계 구역, 둘째는 휴식과 체험 중심의 정서 회복 구역, 셋째는 생태 순환을 유도하는 자연 복원 구역이다. 이 세 영역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기능이 구분되어야 하며, 통행로와 표지판, 관찰 포인트를 적절히 배치해 학생들이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식물 선정은 지역 자생종을 중심으로 계절별 개화 연속성을 고려해야 한다. 봄에는 현호색, 금낭화, 제비꽃, 할미꽃, 여름에는 원추리, 도라지, 패랭이꽃, 벌개미취, 가을에는 구절초, 쑥부쟁이, 감국, 금불초, 겨울에는 상록성 억새나 기린초 잎줄기 등이 적합하다. 이러한 조합은 계절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수분 곤충의 활동 시기와도 맞물려 생태 다양성 유지에 기여한다.

또한 미세생태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 일부 구역은 햇빛이 강하고 건조한 ‘양지대’, 일부는 습한 ‘그늘대’로 남겨두면 다양한 식물이 공존할 수 있다. 토양은 배수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사토와 유기질을 혼합하고, 초기에는 잡초 제거와 멀칭을 병행해 안정화시킨다. 학교의 인력과 예산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지속 가능한 관리 체계를 위해 학년별·학급별로 구역을 나누어 돌보는 ‘정원 담당제’를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3. 교육 프로그램과 학생 참여 — 자연과 함께 배우는 프로젝트형 학습

야생화 정원은 단순한 조경 공간이 아니라, 학교 교육과정과 통합된 살아있는 교실이다. 교사와 학생이 함께 정원을 기획·설계·관리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PBL(Project Based Learning, 프로젝트형 학습) 이 된다. 예를 들어 과학 수업에서는 식물의 생장과 광합성 과정을 관찰하고, 미술 시간에는 꽃의 색과 형태를 스케치하며, 사회 시간에는 지역의 환경 변화와 토종 식물의 의미를 탐구한다. 이런 통합형 교육은 학생들이 교과 지식을 현실과 연결시키며 생태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학생들은 정원 관리 활동을 통해 책임감과 공동체 의식을 배우게 된다. 학급별로 ‘우리 반 구역’을 지정해 물주기, 잡초 제거, 식물 기록을 맡기면, 아이들은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가는 변화를 직접 느낀다. 더 나아가 학교는 ‘생태 동아리’나 ‘정원 기자단’ 같은 자율동아리를 운영해 식물 성장일지를 작성하고, 지역 커뮤니티와 소통하는 활동을 펼칠 수도 있다.

한편 교사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최근 여러 교육청에서는 교사를 위한 **‘생태 정원 교육 연수 과정’**을 개설해 식재 기초, 식물 생리, 생태 설계 방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 이런 역량 강화는 학교가 외부 전문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생태 공간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준다. 더불어 학부모와 지역 주민을 참여시키는 프로그램을 병행하면, 정원은 단순한 학교시설을 넘어 지역 생태교육 거점으로 확장될 수 있다.

 

4. 확산과 지속가능성 — 지역사회와 연계된 생태 문화로의 발전

학교 야생화 정원이 단순한 조경사업으로 끝나지 않고 장기적인 교육자산이 되기 위해서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핵심 가치로 두어야 한다. 즉, 한 번 조성된 정원이 시간이 지나도 활력을 유지하며, 학생 세대가 바뀌어도 그 가치를 잃지 않도록 유지관리 체계와 지역 연계 시스템을 함께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첫 단계는 학교 내부의 운영 주체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초기 조성 후 관리가 어려워지는 이유가 명확하다. 담당 교사의 전근, 예산 축소, 관리 인력의 부재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학교 생태 운영위원회’ 또는 **‘정원 돌봄 협의체’**를 설치해 교사·학생·학부모·지역 전문가가 정기적으로 회의를 진행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협의체는 단순히 관리 문제를 논의하는 수준을 넘어, 정원의 교육 방향과 프로그램 운영을 함께 기획하는 ‘거버넌스’로 발전할 수 있다.

둘째, 지역사회와의 협력 네트워크 구축은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전략이다. 예를 들어 인근 주민센터나 환경단체, 조경전문가, 시민정원사 단체와 협약을 맺고, 학교 정원 관리 및 계절별 보수 활동을 공동으로 수행한다면 관리 부담이 줄고, 지역 주민들의 참여의식이 높아진다. 또한 학교 정원을 지역의 공공자원으로 개방하는 ‘열린 정원(Open Garden)’ 시스템을 도입하면, 방과 후나 주말에도 주민들이 산책하거나 자원봉사 형태로 돌볼 수 있어 정원은 지역 공동체의 생태문화 거점으로 발전한다.
실제 사례로는 서울 성북구의 ‘길음초등학교 생태정원’이 있다. 이곳은 학교 인근 시민단체와 협력해 매달 정원 돌봄 데이(Garden Day) 를 운영하고 있으며, 학부모·학생·주민이 함께 잡초 제거, 씨앗 파종, 곤충 서식지 만들기를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봉사가 아니라, 세대 간 생태교육의 장으로 발전하여 지역 전체의 환경의식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셋째, 프로그램의 다양화와 정기적 피드백 구조도 필수적이다. 정원이 매년 같은 형태로 유지된다면 학생들의 흥미가 떨어지고 학습효과도 줄어든다. 따라서 매년 학기 초에 ‘정원 테마 기획 회의’를 열어, 특정 생태 주제(예: 수분 곤충의 해, 기후변화 대응 식물, 멸종위기종 보호 등)를 정하고 그에 맞는 식재와 체험 활동을 구성해야 한다. 이처럼 프로젝트를 주기적으로 갱신하면 교육적 활력과 생태 다양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또한 학교는 매년 정원 모니터링 보고서를 작성해 사진, 개화기, 생물 출현 현황을 기록하면, 장기적인 데이터 축적이 가능하다. 이러한 데이터는 향후 지역 단위의 도시 생물다양성 지수(BI) 평가나 환경정책 수립 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어, 학교 생태정원이 단순한 ‘교육용 화단’을 넘어 도시 생태 거점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넷째, 정책적 지원과 예산 구조의 안정화가 뒤따라야 한다. 많은 학교가 생태정원을 조성했지만, 예산의 일회성 지원으로 인해 수년 후 방치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교육청 차원의 장기 예산 편성, 지역 녹색기업의 사회공헌 연계, 시민참여형 펀딩 등을 통해 다원적 재원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경기교육청은 ‘학교 생태 공간 조성 지원 사업’을 3년 단위로 운영하면서, 조성 후 2년간의 관리비까지 포함해 지원한다. 또한 일부 지자체에서는 ‘학교-마을 정원 네트워크’ 사업을 운영해, 한 학교의 성공 사례가 인근 학교로 확산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렇게 정책적으로 연계된 구조는 학교 생태정원을 단순한 ‘한 기관의 실험’이 아니라, 지역 전체의 생태 문화 인프라로 자리 잡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지속가능성의 궁극적인 목표는 **‘학교 정원의 자립적 생태 문화화’**다. 정원을 가꾸는 행위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학교 일상 속의 하나로 스며드는 것이다. 아침마다 아이들이 스스로 물을 주고, 점심시간에 곤충을 관찰하며, 방과 후 정원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모습은 학교가 살아있는 생태교육 공동체로 변모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지역 주민들이 주말마다 이 공간을 방문하고, 계절마다 정원 축제가 열리며, SNS를 통해 학교 정원의 소식이 공유될 때, 이 작은 녹색 공간은 도시 한가운데서 사람과 자연을 잇는 문화 플랫폼이 된다.
결국 지속가능한 야생화 정원의 진정한 가치는 ‘식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배우고, 변하는 과정에 있다. 정원은 사라질 수 있지만, 그 정원을 통해 길러진 생태 감수성과 협력의 정신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학교 생태정원의 문화적 확장성, 그리고 미래 세대 교육의 본질적 가치이다.